출근길에 전화가 왔다. 이름을 보니 이덕재 선배님. 아빠와의 인연이 꽤 길었던 분이다. 방송기기정비실이 품질관리팀이 될 동안 함께 하셨던 분이니. 아빠가 쓰러지시던 2006년부터, 명절이면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병원으로 찾아오셨는데 이번에도 설날이라고 오신다는 연락이다.
처음 몇 번은 같은 팀이니 찾아오는 거려니 했지만, 이젠 아빠도 퇴직하셨고 이덕재선배님은 기술본부를 떠난지 오래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명절이라고 또 전화를 하셨다.
내 삶에 신천지 파동(!)이 인지 사흘 됐다. 처음 그들이 신천지임을 알았을 땐 '경악'이었던 감정이 하루만에 '분노'가 되고, 그 다음엔 사람 그리고 믿음에 대한 '실망'과 '체념'으로 바뀌었다. 이젠 함부로 사람을 믿어선 안되겠다 다짐하면서도 그런 다짐이 날 어찌나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에 이 미니홈피도 극히 소수의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공개를 유지했었고, 내 삶을 이야기하는 데 별로 큰 고민을 안 했었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전략에 쓰였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질 수 밖에 없고, 날 점점 더 닫을 수 밖에 없어진다. 그들이 내게서 빼앗아 간 건, 믿음과 신뢰다.
황폐해진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이덕재 선배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을 수 없고,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을 수 없는 이유다.
아빠는 오늘 병원에서 퇴원해 명절을 보내고, 다음 수요일에 새로운 병원에 입원을 하신다. 병원에서 엄마와 함께 짐을 싸고 계시는 한 분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교회에서 담임을 맡으셨던, 그 후로는 나보다 우리 엄마와 더 친해져 버리신 선생님. 얼마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오셔서 엄마를 도우신다. 이번주엔 퇴원 때문에 벌써 두 번이나 오셨다.
이젠 아무 것도 줄 것 없는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분들을 계시기에, 난 다시 바보같이 사람을 믿어버리고 말 것이다. 배신감에 흘리는 눈물보다,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 더 많은 양이기에- 난 아직 사람을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