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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상 유치원에 며칠 늦게 들어갔다. 처음 출석한 날 쉬는 시간, 두 패거리가 날 가운데 세워놓고 물었다. "얼른 결정해. 우리 편이야, 쟤네 편이야?" 편가르기였다. 이날 난, 이렇게 처음으로 세상을 배웠다.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어딘가에 합류한다는 건, 전혀 모르던 세계를 배우게 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언제나 그 세계는, 별로 옳지 않다.

항상 예쁘고 산뜻한, 홍대원빈 이지형오빠가 십센치와 합동공연을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십센치가 옳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깐. 그냥-. 다만-. 우리 지형오빠가 킹스타에 맞춰-. 아- 아- 거리는 모습이. 항상 시크하게 건반만 누르던 우리 영조오빠가-. 마이크에 대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게-. 왠지 어디선가 나쁜 친구를 만나- 더이상 순진하지 않게 된 어린애를 떠올리게 해서-. 그냥 뭐 그렇다는 거다. 절대 십센치가 나쁜 친구라는 소리는 아니다. 진짜다.



올초 아이콘 공연에 갔다가 알게 됐다. 이지형과 십센치의 합동 공연 소식. 몽니와 데이브레이크와 십센치의 함께한 아이콘 공연이 정말 좋았기에, 그리고 예쁜 지형옵과 ...한 십센치도 완전 좋아했기에. 예매했다. 예매 후 기다리는 동안 기대는 했지만, 그 기대가 너무 작았던 걸까. 엥- 기대했던 것보다 수십배 수백배 좋았다. 아- 이렇게 집에 오는 내내 신났던 공연이 얼마만이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무대에 서서 깨알같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내내 행복했다. 어떤 순간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비록 그게 지형오빠의 킹스타 합류 장면이긴 했지만. 웃느라 눈물을 흘린 거긴 하지만. 어쨌든 눈물이 났던 건 사실이니, 그렇다 치자.

권정열 씨가 에구구구 부를 땐, 아- 미치겠더라.
그리고 철종씨, 힘내. 엥.

예상치도 못한 노래를, 예상치도 못한 가사로 불러대는 순간도 어찌 잊을까. 한참을 웃다가- 앞에서 저러고들 있는데 아무 표정 없이 진지하게 건반을 치고 있는 영조오빠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영조오빠는 대체 이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엥- 어떡해. 영조오빠,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랩도 아닌데 랩이 아니라고 하기엔 랩 같고 랩 같다고 하기엔 랩도 아닌 그 무언가로, 스텝바이스텝을 부르는 이지형&십센치 씨에 합류해버렸다.
...휴- 괜찮아요. 오빤 잘생겼으니깐.




 그래도(응?) 진심으로 좋았다. 올해 들어 본 모든 공연이 다 좋았지만 이번 것은 안 봤으면 후회했을 듯 하다. 이지형과 권정열의 목소리 조화도 멋졌고, 구성도 알찼다. 돈만이사장님이 마트에서 사오셨다는 무대 소품도 조명과 잘 어울렸고. 중간에 두어번 왼쪽 스피커가 나오지 않아 신경쓰이긴 했지만 워낙 알찬 공연이었던지라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다. (실은 공연이 끝나고 나가서 '스피커가 나오지 않은 건 사고였나요? 알고는 있었나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음향시설인데 가능키나 한 일인가요?' 라고 따지려고 했었는데 나오면서 까먹었다. - _-)


벅찬 가슴을 안고 지하철을 타기 아쉬워 서울역까지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아이팟 전체 음악을 랜덤플레이 했는데, 이렇게 한곡 한곡 모두 좋을 수가 없다. 들을 음악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 곡들을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들을 음악이 없는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찾아 들을 생각이 없는 단지 게으른 부류인 걸까. 아니면 음악을 들어도 쉽게 감동하지 않는, 심적인 여유가 없는 부류인 걸까. 궁금해진다.

어쨌든 좋다. 이지형씨와 십센치에게, 내 아이팟에 들어있는 노래의 음악가들에게, 오늘도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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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bh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