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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씨가 좋다, 다짜고짜.

악기들의 도서관으로 시작해서 좀비들, 펭귄뉴스까지 읽으면서 난 '미치겠다'를 몇 차례나 반복했던가. 글을 잘 쓴다, 재밌다의 종류가 아니라 매 순간순간 감탄했다. 이렇게 흥미로운 사람이라니.
김연수씨와 함께 쓴 대책없이 해피엔딩까지 읽고 나니 어느새 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중혁씨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재치에 전율했고, 내공에 전율했고, 능청스러움에 전율.... 엥- 난 이 책을 보고 부르르 떨기만 했나.
그 후로 이틀을 김중혁이란 이름으로 검색만 하며 보냈나보다. 그 와중에 상상마당에서 김중혁씨가 진행하는 공연에 관람신청을 하고, 김중혁씨가 제작하는 인터넷라디오 홈페이지에 접속해보고, 각종 기사들을 훑고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추가했다.

블로그를 샅샅이 읽다가 쓰고 있는 서평이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게 됐다. 오호- 당연히 생기는 호기심. 다음날 바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원래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서가를 샅샅이 뒤져서 결국 찾아냈다. 아 이런 의지라니. (책은 닉 혼비의 소설들 틈에 숨어 있었다.)

퇴근길에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아- 뭔가 겉도는 느낌이다. 너무 피곤해서 글자만 읽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글 자체가 산만한 건가. 그도 아니면 번역이 잘못된 건가. 참 진도가 나가질 않는 상황이었지만 읽고 또 읽었다.

왠지. 김중혁씨 글 같다. 김중혁씨가 서평의 형식 뿐 아니라 문체 자체에 영향을 받았나. 재치발랄함이 김중혁씨만의 색깔이라 생각하고 사랑에 푹 빠져버린 건데 왠지 막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다른 누군가의 '키치'에 불과했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지금의 이 기분일까. (근데 사람의 스타일에도 '키치'라는 말을 붙이는 게 가능한가?)

심란한 마음으로 좀 더 읽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난,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있었고. 근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급취소해 버렸고. 부산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는데 부산친구 별총총은 내가 간단 소리에 서울로 올라와 버리고. 뭐 그런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그러다 공항 앞에서 우연히 김중혁씨를 만나고,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그렇게 사랑에 빠져... 그 후의 이야기는 계속 적고 싶으나 김중혁이란 검색어로 이 글에 접근할 수도 있는 미성년자를 생각해서 참겠다, 고 하고는 싶으나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잠에서 깨버렸다.

잠에서 깬 후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드디어 미쳤구나"였고, 계속 이어서 꾸고 싶단 생각을 하긴 했으나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포기했다. 아 이런 꿈이라니. 몹시 우습게도 완전 꿈이었는데도 왠지 난 미안해졌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마치 바람이라도 피운 느낌이라. 정말 드디어 미친게지. (어쩌면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ex-남친이 아니라 김중혁씨인지도. 죄송합니다. 엥)

(어쨌든. 김중혁씨가 아닌 책으로 다시 돌아와서) 충분한 수면을 취했음에도, 뭐가 문제일까. 1. 닉 혼비가 써놓은 목록에 내가 모르는 책들만 쫙 나열되어 있다. 2. 편집상의 문제가 있다. 3.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4. 자체가 원래 잘 안 읽히는 책이다. 정답은?

음- 전혀 모르는 책들만 나열돼 있다 쳐도 그건 별 문제가 없는 듯 하다. 닉 혼비는 책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책에 대해 논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그 밖의 이야기들에 대해 쓰고 있으니깐.

편집면에서 보면, 수록된 책 제목이 일단 번역된 서명을 쓰고 그 옆에 원서명을 적었는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명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한국판 서명을 적어 놓았는데 (물론 앞으로 넘겨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뭔가 적절하지 못한 듯 하다. 차라리 원서명이 주가 되는 기술 방법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영어를 공부하지 않은 독자를 우선으로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서명은 '이름'의 한 종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번역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때로 어떤 단어의 선택이 적적한 거였나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쩔 수 없겠지. 외국어를 한국어로 아무리 정확하게 옮기려 해도 절대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서로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원서를 읽기 위해 영어공부를 더 할까도 잠시 고민해 봤지만, 음- 그냥 한국 사람이 쓴 국내서만 읽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자꾸 어디선가 들려와서-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겠다.

어차피 정독해야 할 종류의 책도 아니고 해서 제일 뒷부분만 읽고 '옮긴이의 글'을 펼쳤다. 아- 근데 첫문장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장 인기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니. '가장 -한 사람 중 한 명'이란 표현은 논리적으로 너무 맞지 않아서 싫어하는데, 첫문장에서 들이대고 있으니. 내가 재밌게 읽지 못한 책임을 모두 옮긴이에게 돌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부당하겠지만 어쩌겠나. 이 첫문장으로 역자는 번역체에 길들여진 사람으로 낙인 찍혀 버렸는데. (이런 억지가 또 어딨냐고 따진다면, 사과할 용의는 얼마든지 있다. 엥)

그래도 이 책이 완전 흥미롭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예- 나도 바로 번역체!) 뻔하디 뻔한 서평보다는 작가가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듣는 게 훨씬 흥미로우니깐 말이다.
게다가 어차피 난 씨네21 같은 잡지를 볼 때도 영화 정보보단 편집자의 말이나 맨 뒤에 수록된 칼럼을 더 열심히 읽고 그런 것만 기억에 남겨 두는, 원래 이런 애였다. ......응? 그럼 "우와 이 책 엄청 짱이다"라는 반응으로 시작했어야 하지 않나. 뭔가 일관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김중혁씨에 대한 사랑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 덕분에 그런 꿈까지 꿔서 (중간에 잠깐 실망할 뻔 하긴 했지만) 또 하루종일 김중혁씨의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고, 결국 더욱 더 김중혁씨가 좋아졌다는 일관적이고도 뻔한 얘기를 남기게 됐다. 이거면 충분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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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bh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