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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뿐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빅 픽처를 읽으면서 유감스럽게도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이거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떤 분이 생각났고, 어떤 책이 생각났고, 어떤 상황들이 생각났으니깐. 그 분이 무명은 아니다. 기회가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닮았다. 이 책을 읽기 전 그 인터뷰집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분들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근데- 하필 읽은 순서가 그랬고, 그래서 떠올렸다. 먼저 떠올린 분은 지승호씨다. 생각난 책은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다.

솔직히 말해 김제동씨의 인터뷰집은 그저 그렇다. 물론 취지도 좋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 재밌다. 김제동씨의 음성이 지원되는 듯한 느낌도 꽤 즐길만하다. 이 책이 어떻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읽을만 하다"고 얘기해줬다. 근데 왜 그저 그렇냐면, 너무 부실한 면이 없지 않고 어떤 면에선 뻔한 면이 없지 않고, 특히 각 인터뷰이마다 편차가 너무 크다. 컨텐츠를 가진 사람(예를 들면 정재승 교수)의 경우엔 읽을 가치가 있는 인터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굳이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다)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읽을 이유조차 찾을 수 없다. 인터뷰이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다.

어차피 김제동씨는 인터뷰어가 아니기에 딱 김제동씨에 맞는 인터뷰를 했을 거다. 인정한다. 그 자체로 보면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근데 왜 불만이냐면 김제동이라는 이름 하나로, 인터뷰집을 내놓자마자 첫주 순위가 6위였나까지 훌쩍 뛰어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김제동의 '인터뷰'에 대해 논한다. 어떤 인터뷰어가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인터뷰집을 내놔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에 비해 조낸 유치하고도 웃긴 상황이지 않은가. 댁들이 말하는 감동이니 소통이니 하는 것들은 그 인터뷰집에 이미 알알이 들어박혀 있는데 말이다.

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아무 죄 없는 김제동씨(의 책)한테 짜증내고 있는 게 더 웃긴 상황이란 걸. 어쩌면, 김제동씨의 인터뷰집에 대한 칭찬글을 지승호씨가 마구마구 RT하는 걸 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짜증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뭐랄까, 그런 거다. 다 죽어버린 만화시장에 어느 연예인 한 명이 나와서 끼적끼적 만화를 그려 내놨는데 그게 호평을 받으며 절찬리에 팔려나가는 상황인 거다. '연예인이 그린 만화'치고는 완전 훌륭한 작품인데, 작가의 이름을 뺀 채 만화의 퀄리티만 두고 본다면 그저 그런 작품이랄까. 근데 그걸 어떤 만화가가 나서서 자꾸 뭐라뭐라 호평까지 해주는 거다, 차라리 불평을 하지 ㅆㅂ.

사실 이 밑에밑에 페이지에 가면, 김제동씨의 인터뷰집을 읽은 후 처음에 썼던(쓰다 만) 리뷰가 (비공개로 저장돼) 있다. 20대 초반에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오픈마인드'란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삶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를 잘 이해해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것처럼 이야기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간다 어쩐다 하는 조낸 아름다운 글이다. 근데 머릿속엔 불만이 가득차 있는데 그렇게 간지러운 얘길 하려니 도무지 이어지지가 않더라.

어제 서가에서 뽑아온 책이 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독일의 기자가 40일간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기발한 도전을 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솔직히 얘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아직 몇 페이지 읽지 않았지만 뒤에 내용이 어떻든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근데 왜 난 자꾸 이렇게, 솔직해지는 걸까. 미투데이에서도 이미 "당신 맘에 안 든다"고 알게 모르게 고백했다. 이 포스팅마냥. 우리 여리디 여린 김제동씨나 그 이상으로 여린 우리 지승호쌤 생각을 하면 이런 포스팅 당장 지워버려야 마땅하겠지만, 아 모르겠다. 이게 다 위르겐 슈미더 기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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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bh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