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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9. 09:05

결국은 또 김중혁 지금 이야기2011. 6. 9. 09:05

너희들 발 밑에 콘센트 안 쓸거면 좀 비켜줄래?
자리도 많은데 왜 하필 거기니?
라며 둘러봤지만 자리가 없다. - _-
그래도 너희가 처음에 들어와 앉았을 땐 지금보다 자리가 많았을 거잖아.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그렇게 노닥거릴 거라면 제발 그 콘센트 자리 양보하고 좀 나가줄래?
으하하- 연필깎이 사오는 걸 깜빡해서 뭉뚝해진 연필로 끼적이면서 노트 첫 장에 옆자리 커플 욕이나 써대니 찌질하기 그지없다.
아 아이폰 충전해야 한단 말이다.
너희, 집에 안 가니?

세모난 연필도 동그란, 육각형 연필 깎는 연필깎이에 깎아질까.
조그만 연필깎이를 쥐고 연필을 돌릴 때 그 사각거림이 좋아
컴퓨터로 모든 업무를 처리함에도 하루에 네댓번씩 연필을 깎아댄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연필을 깎고
심심할 때 연필을 깎고
머릿속을 정리할 때 연필을 깎고
생각나면 연필을 깎는다.
이렇게 연필을 깎아대고 있으면
우울할 때 해지는 광경을 본다는, 그래서 어느날은 마흔세번이나 해가 지는 걸 보고 있었다는
어린왕자가 생각난다.
어린왕자의 별이 작지 않아,
24시간을 기다려 해지는 광경을 봐야 했다면
어린왕자도 대신 연필을 깎아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부끄러운 걸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셔서 부끄럽고
그래서 또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어린왕자가 만난 이상한 어른과-
몇번이고 지는 해를 바라보던 어린왕자와-
수없이 연필을 깎아대는 내가, 다른 점이 뭐란 말인가.
남들이 보면 전부다 그저 의미없는 행동인 것을.

순수한 어린왕자와 고주망태 아저씨를
같은 취급 해버리니 어쩐지 통쾌해진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옆자리 커플이 콘센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노닥거리지만 않았어도
절대 어린왕자를 비하하는 발언 따위는 안 했을 거다.
그냥 나가길 기다리다 보니
연필로 끼적이게 되고
연필로 연필 얘기를 하니 연필 깎는 얘기로 이어지고
연필 깎는 얘기를 하다 보니
어린왕자 생각이 났던 거다.
그 뿐이다.

김중혁씨의 좀비들 뒷표지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 하나의 사건은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되어 있었다.' 란 본문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런 게 아닐까. 원래 세상은 다 이런 거니까.
어린왕자는 아무리 억울해도 책임을 나에게만 물어서는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 탓인 거다.

김중혁씨의 책을 꺼내 윗 문장을 베껴쓰는 동안
커플은 일어나 나가고 여자 둘이 들어와 앉았다.
얼른 다가가 "제가 콘센트 쓰려고 옮기려던 자리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시면 저와 자리 좀 바꾸시죠." 했다.
워낙 예의바른 내가 워낙 정중하게 말한지라 흔쾌히 옮겨줬다.
이게 다 김중혁씨 덕분이다. 엥-




이렇게 친절한 김중혁씨는
이 날 저녁 내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김중혁 씨가 정말 좋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태어났거나, 조금만 더 그분을 일찍 만났다면
먼저 결혼하자고 했을텐데. 엥-




난 당분간 모든 글의 결론을 "김중혁 사랑해"로 낼 기세라서
좀 걱정된다.
횬젠 힘내.
김중혁선생님 죄송합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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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bh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