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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4. 14:17

rleh 오랜 이야기/글2009. 6. 24. 14:17

2006년 2월말, 아빠가 쓰러지신지도 이제 3년하고 4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며칠전 아빠의 근황을 묻는 어떤 분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아빠한텐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한텐 불효자식으로 남을 것 같다고.

이 말을 한지 이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 그 '나중'이 되지도 않았는데... 전 이미 불효자식이 되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많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서 가만히 누워계시는 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보호자는 옆에 앉아 지켜보고만 있고.

사실 '가만히 누워있는 것'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깁니다. 아빠와 같이 재활환자는 아침식사 후부터 저녁식사 전까지 계속 재활치료를 받습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기구를 이용한 운동 등..

보호자는 계속 따라다니며 보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아빠처럼 스스로 거동을 못하는 경우 한 사람의 생활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잠시도 옆을 뜰 수 없고 쉴 틈도 없는 생활입니다.

특히나 우리아빠는 너무도 예민해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을 경우 너무 힘들어 합니다. 언젠가 엄마가 지쳐 잠시 간병인에게 맡긴 적이 있는데-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까칠해지고 표정이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린 아빠의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위해서는 간병인을 쓰는 게 맞을텐데.. 제 수입은 우리식구 생활비를 따라갈 수도 없는 수준이고, 매달 만만찮은 병원비 때문에- 간병인 쓰는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 우습지도 않은 돈을 벌어보겠다고, 매일을 아등바등대고 있고.. 그래서 평일날 아빠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했을수도 있지만, 난 그래도 일하지 않냐고- 주말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냐고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댔던 것도 같습니다.

 

엄마가 지치고 아픈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모른 척 했던 게 사실입니다. 작년 언젠가 한약을 한 번 지어드린 게 다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눈이 좀 이상하다고, 동네 안과에 갔다왔다고 말했을 때.. 맘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어제 서울대학병원에 예약해서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받아오셨습니다.

망막을 잇는 부분이 끊어졌다고-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하면 괜찮잖아. 수술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지금 우리집 상황에선 막막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막 수술을 하면 한 달여간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엄마의 간병은 어찌 해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 투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제 자신도 너무 비참하고, 무엇보다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 멀리도 온 것 같은데...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봅니다.

이젠 세상을 그만 알아도 될 것 같은데, 이젠 제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다 알아버린 것 같은데... 아직 제가 알아야 할 게 더 많이 남았나 봅니다.

 

너무 막막합니다.

너무 막막합니다...

미치도록 막막해서... 부끄럽지만..이렇게 글을 씁니다. 기도해 주세요.

불쌍한 우리 엄마 아빠를 위해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너무도 어리숙한 저를 위해서... 이 모든 상황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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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bhyon